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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암살되었다! 20.04.21(화) Unit[4]

오늘의 돋보기 이슈/여론의 쟁점

by 히스토리매이커 2020. 4. 22.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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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뉴스로 전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김정은이 심장이 좋지 않아 ... 심장 전문의를 외국에서 비밀리에 모셔왔다는 썰들이 지난 주에 나돌았었다. 

그리고, 급기야 오늘 심혈관 수술후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는 CNN속보가 전세계에 타전되었다. 


이 집안은 할아버지 때부터, 삶보다는 죽음이 더 이슈가 되어, 인구에 회자되는 아주 특이한 집안인 듯 하다!


일성이 죽던 지난 1994년 7월! 그 여름을 기억한다. 정말 엄청 무더웠던 여름이었다. 그 해는 북한의 고난의 행군이 치열했던 해로도 잘 알려져 있다. 먹을 것이 없어, 인육을 먹는 이웃, 가족들을 지켜보며, 인간적 비애를 느꼈다던 북한 주민들의 처절한 고백들이 탈북자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져 오기도 했었다. 


아직 까지도 김일성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 사인이 명확하지 않다는 주장과 함께, 지난 1994년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될 경우, 그동안 지켜왔던 권좌를 잃게 될 지도 모른다는 김정일의 염려증이 거의 유폐되다 시피했던 그 당시의 김일성을 암설했을 거라는 추측이 꽤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 배경에는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의 꽤 신빙성 있는 체험담이 있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1994년 죽기 직전 북한을 자주 드나들던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에게 “내가 외국에 나갈 수 있도록 좀 도와주시오!”라고 부탁했다 한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잠시 밖에 나갔던 부속실 직원이 쏜살같이 되돌아와 김 회장을 밖으로 내보낸 뒤 “수령님 이게 무슨 망발입니까”라고 책망하는 소리까지 들렸다 한다. 도청된 것이다! 김일성이 70세가 되던 1982년쯤 전권을 아들 김정일에게 물려준 뒤 사실상 유폐됐었고,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 추진은 이런 김정일을 견제하기 위한 김일성의 승부수였을 것이라는 추측, 그리고, 이를 일찌감치 알아차린 김정일이 아버지의 견제와 남북정상회담을 사전에 차단하고 저지하기 위해 은밀하게, 수령을 암살한 게 아니었겠냐는 추측이다. 

[출처]  한국일보(2016년,11월 22일), "권좌 밀려난 김일성, 김우중에 해외 보내달라 부탁"


이를 더더욱 신뢰할 만하게 뒷받침하는 것이, 이런 대화가 있은 후 김우중은 짐도 제대로 꾸리지 못한 채, 황급히 북한땅을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는데, 이 역시 부속실 소속 직원이 그를 내쫓다시피 강제 추방한 것이라는 김우중회장의 회고이기도 하다.  



황장엽 같은 거물급 관료들이 그 땅을 떠나온 시기도 김일성 사망 시기와 비슷하게 맞물린다. 기억하기로 김일성 사망(1994년), 3년 후인 1997년경 이었던 것 같다. 


1996년 5월 10일, 북한 관영지 <로동신문>은 당 내에 수령을 받드는 척하며 음모를 꾸미는 야심가가 있다는 기사를 내놓았다. 이는 숙청을 암시하는 기사였다. 다시 7월 김정일은 황장엽에게 사상비판을 가했다. 이미 황장엽은 북한 내부에서 김정일의 권력 기반 장악을 위한 타겟이 된 상태였다.


황장엽은 1997년 1월 30일에 김정일의 지시로 북일수교 및 경제원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나리타 공항을 통해 방일했다. 일본에서 조총련의 극진한 환대를 받았지만 기자들에게 신경질을 내는 등 심상찮은 조짐을 보였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사회주의의 실패 운운하는 발언을 했고, 일본의 야마자키 자민당 정책위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며 식량 원조, 북일 수교 문제를 논하려 했지만 미국의 압력을 받은 일본이 황장엽과의 면담을 거부해서 13일간의 일본 체류에서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고 쓸쓸하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는 수행원 김덕홍과 함께 2월 12일 바로 중국의 북한 대사관으로 갔다가 다시 한국 총영사관으로 가서 전격적으로 탈북의 뜻을 전달하였다.


   [출처] 문화일보(2010년. 10월 11일), "황장엽, 손발 묶인 남한 생활" 한때 자살 생각


안타까운 것은 황 선생이 김대중 노무현정부 10년을 지내는동안 마치 새장에 갇힌 새처럼 그 뜻을 펴지 못한 채, 점차 노쇠해 졌고, 가족과 아끼던 제자들을 희생 시키며 까지 남한 땅으로 넘어온 터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손발이 묶인 한국 생활로 한때는 자살도 생각했다는 얘기들을 했다는 것이다.

 

북한엔, 지금의 최고 지도자를 대신할 대안 세력이 존재하는 걸까? 

과거에, 어느 기자가 이 질문을 황장엽씨에게 던졌었다. 황장엽씨의 답변은 아주 단호했던 걸로 기억한다. 분명히 존재한다! 추측컨대는 장성택과 그의 측근들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1~2년 내에 북한에 급변사태가 벌어지면 이 한반도 땅은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걸까?

 남과 북의 통일을 가장 싫어하는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코 중국이 아닐까한다. !  그들은 70여년전, 625전쟁 당시, 북한이 UN군에 의해 자유진영의 영토로 흡수되는 것을 저지하고자 36만명의 중공군을 보내오지 않았던가? 미국과 바로 대면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 탓에, 조금이라도 긴장의 완충지대를 만들어 두고자 했던게 저들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위키백과에 중공군에 대한 의미가 보다 명확히 설명되어 있다.



중국인민지원군(中國人民志願軍)!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원한 중화인민공화국의 군대다. 대한민국에서는 중국 공산당의 군대라는 의미로 중공군(中共軍)이라고 표기하나 정규군인 중국 인민해방군과는 약간 성격이 다르다. 중국군(中國軍)이라고도 한다.


중국인민지원군은 대부분의 병사들이 중국 인민해방군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당시 신생 공산 국가였던 중화인민공화국이 국제 연합군과 공식적인 전쟁을 한다는 인상을 피하기 위해 중화인민공화국의 정규군인 중국 인민해방군과는 다른 직제와 편제를 가졌다. 공식적으로는 모두 "지원병"인 것처럼 꾸몄으나 사실상 만주에 주둔했던 인민해방군의 제4야전군이 이름만 바꾸어 참전하였다. 총 37개 군대, 113개 사단이 참전했다.


중공군 개입의 배경!

1950년 6월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계속 밀리던 한국군은 미군을 중심으로 한 국제 연합군이 참전하고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켜 서울을 수복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은 38선을 넘으면 군대를 북한에 보낸다고 경고하였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을 대수롭게 여기고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도취되고 있었던 연합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은 이것을 무시, 계속 북상하여 평양을 점령하고 압록강 근처 중국 국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일성은 강계시를 임시 수도로 정하고 중화인민공화국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다. 더글러스 맥아더 등 몇몇 서방 인물들은 전세를 중국과 만주까지 확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소련 참전의 빌미를 준다고 생각하여 동의하지 않았다.








세상이 비록 어수선하지만...  그럼에도 난, 오늘 내 할 일을 하련다!


151~200.


190. We make our own fortunes and we call them fate. 






401~450. 


415. I always try to live my life as if there were no second chances.



434. Happiness is not something ready-made. It comes from your own actions.



439. The white skin inside the colored peel of an orange contains a great deal of fiber.



444. “Impossible” is a word to be found only in the dictionary of fools.





651~700.


664. The best way to learn to draw is to draw whatever you are really interested in as much as you can. 



665. With a strong will, you can have whichever life you want in any circumstances.



693. We don’t have an eternity to realize our dreams, only the time we are here.



695. One of the reasons mature people stop learning is that they become less and less willing 

        to risk failure. 



699. A man can succeed at almost anything for which he has unlimited enthusiasm.






901~905.

905. Nothing is as strong as parent’s love for their children.


923. The joys of parents are secret, and so are their griefs and f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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